한 명의 번역가, 두 가지 번역 <플라나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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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일본어 번역은 다른 언어에 비해 오역이나, 초월번역 같은 사태(?)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우리나라와 문장 구조가 유사하기도 하고, 문화적 측면으로도 비슷해서, 굳이 직역을 하더라도 어색함 없는 번역물이 나온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은 일본의 나오키상 수상작 <플라나리아>를 보고 나서부터 완전히 깨져버렸다. 그리고 그 어떤 번역물을 신뢰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한국판 <플라나리아>는 크게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출판사 창해가 2001년과 2005년에 내놓은 버전이고(현재는 절판되었다), 다른 하나는 출판사 예문사가 내놓은 2016년 버전이다. 그러나 번역가는 모두 같다. 한 사람이다.


내가 처음 플라나리아를 읽은 것은 예문사의 것이다. 예스24에서 공개한 20여 페이지를 읽다가 재밌다 싶어 책을 사려고 봤더니, 역시나. 책값이 비쌌다. 그래서 중고책을 알아보려는데 플라나리아가 여러 번 출간됐다가 절판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배송비 포함 4천원 정도에 전판된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적으로 신뢰했다. 창해는 꽤 유명한 출판사였고, 번역가도 예문사와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배송받은 책의 첫 문장을 보자마자 뒷통수가 얼얼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다른 소설인 줄 알았다. 





다음은 소설 <플라나리아>의 첫 번째 문장이다.



►예문사

다음 생에는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고 싶어.

내가 예스24에서 처음 읽었던 문장은 이러했다. 그러나 창해의 플라나리아는…


►창해

이담에 다시 태어날 때는 플라나리아가 되게 해주소서.


으잉? 정말 이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소설 도입부가 아니라 어쩌면 머릿말을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읽다 보니 뭔가 엉성한 느낌은 나지만 스토리가 매우 흡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완전히 속았다, 고 느꼈다. 간결했던 문체의 플라나리아는 온데간데 없었고, 너저분한 문체의 플라나리아가 손에 들려있었다. (물론 출판사나 번역가가 사기꾼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단어나 문장 구조가 달라져 있었다.

심지어 없던 큰따옴표가 생기기도 한다.


►예문사

“... (전략) 자세히 보면 머리가 삼각형이라 좀 야하더라.”

그게 왜 야하냐고 다들 웃었다. 나는 술잘을 홀짝 비우고 ...(후략)


►창해

“...(전략) 자세히 보니까 머리가 역삼각형으로 쭉 빠진 게 좀 외설스럽더라.”

외설스러워?

다들 웃었다.


나는 이 부분에 원래 따옴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궁금해서 일본어 원문까지 찾아보았다. 그리고 <창해>시절(?)에 따옴표를 임의로 넣은 것이 확인됐다. 예문사 때는 대부분 원칙대로 따옴표가 없는 것은 굳이 넣지 않았는데, 창해 시절은 없는 따옴표를 직접 만들어 넣었다.



►예문사

와아, 하고 두 여자와 한 남자가 똑같은 탄성을 올렸다. 


►창해

아하.

두 여자애와 한 남자애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뜻은 모두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이라는 것은, 작은 것 하나하나에 읽는 맛이 달라지기 하고, 죽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한 번역가에서 두 가지 번역이 나왔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은 그 유명한 <노인과 바다>의 첫 문장, 5개 출판사의 한국어 번역들이다. 이것으로 이번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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